앱테크 노예생활을 시작하다


새벽 4시 출근길.
전 매일 항상 같은 버스, 같은 자리(맨 뒷자리 구석)에 앉아 출근을 합니다.
버스 종점에서 두 세 정거장 지난 곳이라 항상 텅텅 빈 채로 버스가 오지요. 
그래서 내가 앉고싶은 곳, 좌석의 선택권이 많습니다.

전 항상 맨 뒷자리에 앉기 때문에 버스 내부가 다 보이는데요,
신기하게, 항상 똑같은 자리에만 앉는 같은 사람들을 여러 명 자주 보게 됩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자리가 다 따로 있는 것 같아요.

☞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에만 앉는 안경 쓴 단발머리 아주머니 (서울역사공원 앞 하차)
☞ 내리는 문 바로 앞에만 앉는 모자 쓴 아저씨 (천호역 하차)
☞ 뒷바퀴 있는 자리 복도쪽에 앉아 얇은 성경(?) 같은 책을 보는 아주머니
(본인 창가 쪽에 절대 안 앉음. 다른 사람이 창가쪽으로 들어가려고 해도 잘 비켜주지도 않음. 뒤에서 쳐다보는 내가 다 짜증이 남. 동묘역 하차)
☞ 맨 뒷좌석 바로 앞자리 오른쪽 창가에만 앉는 금발의 긴 생머리 아가씨
(종각역 하차, 올해 들어서 안보임, 출근시간 바뀐 듯..)
그리고,
☞그 사라진 긴 생머리 아가씨 대신, 그 같은 자리에 앉아가는 아주머니!! (← 광화문 하차, 오늘의 주인공)

이 아주머니는 어디에서 타는지 잘 모릅니다.
제가 창 밖 구경에 멍 때리거나 휴대폰 좀 보고 있다보면 어느순간 제 바로 앞자리에 항상 앉아있어요.
이 분은 한가지 특이한 게, 휴대폰에 무슨 지도 앱을 켜 놓고 그 휴대폰을 창문에 밀착해서 붙여 놓습니다.
무슨 GPS 신호(?)를 받으려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계속 지도 화면을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뭐지? 초행길의 외국인인가?...'


한 번이면 모르겠는데, 1월 초부터 인가 버스에서 한 다서여섯번은 본 것 같아요. 특히 버스가 신설동에서 광화문까지 종로를 지나갈 때 그 광경이 항상 목격됩니다.

그래서 혹시 예전의 저처럼, 티맵(T-Map) 운전자점수 쌓으려고 네비켜고 버스 타는건가.. 싶었는데, 네비는 진행방향이 항상 위로 나와야 하잖아요..
근데, 그 아주머니의 지도는 버스 진행방향과 상관없이 그냥 옆으로 지나가네요?! ㅋㅋ 뭐지?!
그러다가 광화문에서 저랑 같이 내린 후, 다른 버스로 환승을 하고 어디론가 떠납니다.

참고로, 시내버스로 티맵(TMAP) 운전자점수 및 주행거리 올리기 꼼수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 참고바래요~






오늘 아침 출근길, 제 앞자리에 앉은 어떤 여성분이 휴대폰을 자꾸 버스 창문에 갔다대길래 무심코 봤더니, 허걱! 또 그 아주머니..!!ㅎㅎ
오늘만큼은 제가 너무너무 궁금해서 실례인 건 잘 알지만, 살짝 그 분 휴대폰 화면을 뒤에서 힐끗 쳐다봤어요.
역시나 지도 화면에 버스의 움직임에 따라 현재 위치가 계속 표시되고 있는데, 그 지도 아래쪽에 '올리브0.. 20원 적립'이라고 써 있는 거에요.



'아...!!!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앱테크'인가?!...'



광고보고 포인트 받는 건 들어봤는데, 지도를 보면 포인트를 준다고..? 이게 뭘까 싶었지요.
그래서 출근하자마자 업무는 잠시 뒤로 미루고 검색질을 시작합니다.ㅋㅋ





결국은 찾았습니다.
바로 '토스뱅크의 만보기 프로그램' 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미션 장소에 걸어서 도착하면 20원씩, 하루에 다섯군데 총 100원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네요.




그렇습니다.
제 앞자리에 탔던 그 여사님은 '걸어서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적립금'을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그 길가에 있는 목적지를 타켓으로 적립금을 획득하고 계셨던 것이죠. 제가 아침에 봤던 그 여사님 휴대폰 속의 목적지는 바로 아래의 '종각역 올리브0' 이었던 것입니다. 버스전용 중앙차로로 버스가 가다보니 인도하고는 거리가 멀어져 최대한 인도쪽으로 가깝게(?) 하기 위해, 버스 오른쪽 창가 자리에 앉아 창문에 휴대폰을 바짝 붙이고 있던 것입니다.





'이게 과연 되나? 정말 될까? 되니까 매일 저러고 있겠지?'



궁금해서 저도 토스 앱을 깔고 바로 가입을 했어요. 그리고 버스 퇴근길에 테스트를 해봤죠. ㅎㅎ

그러나,,
올리브0 합정역점 실패!
올리브0 홍대입구점역점 실패!

미션장소의 어느 일정 범위안에 들어야 하는데, 버스가 도로 한가운데 중앙차로로 가다보니 큰 대로에서는 그냥 스쳐지나기만 합니다.




근데, 제 휴대폰이 이상한건지 아님 주변의 높은 건물때문에 GPS가 간섭을 받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버스 중앙차로로 이동하고 있는데도 위치가 인도쪽에 있는 것으로 나오는 구간도 있습니다.
그 덕분에 길 건너편에 있는 곳인데도 성공을 하네요!!! ㅎㅎ

올리브0 신촌역점 성공!!




여기도 역시.. 올리브0 신촌대로점 성공!!




간만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가는 곳도 있습니다. 버스에서 잠깐 내려서 갔다오고 싶을 정도네요. 이제서야 왜 그 여사님이 휴대폰을 창문 가까이 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목적지를 간만의 차이로 지나칠 때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창문쪽으로 가져가는 행동을...ㅎㅎ ㅠㅠ ㅋㅋ

경희궁공원 실패!!
올리브0 세종로점 실패!!




마지막 올리브0 종각점 성공!..
이렇게 해서 집에 오기까지 오늘 3번의 미션 성공을 하고, 버스에 가만히 앉아서 총 60원을 벌었(?)습니다.




제가 사는 집 주변에는 미션장소가 2곳 밖에 없는데다가, 자주 가지 않는 먼 곳에 있어서 40원(2곳×2) 받으려고 일부러 시간내서 가기에는 좀 아닌 것 같네요..

하지만, 버스에 앉아 할 일 없이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 들으며 멍하게 시간을 보내느니, 몇 십원이라도 수익활동(?)을 하는게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위의 여사님이 대단해 보이기도 하네요. 왠지 짠테크 고수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왕 토스 가입한 김에 아예 파킹통장 계좌도 새로 개설하고 교통카드로 쓸 체크카드도 신청했습니다. 교통카드 쓸 때마다 그 일부를 적립금으로 환급해 준다길래 저처럼 장거리 대중교통 이용할 때 몇 푼이나마 도움이 될 것도 같네요. 조만간 대중교통 요금뿐만 아니라, 전기, 가스 요금도 줄줄이 인상된다는데 앞으로는 짠테크, 앱테크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이게 최선인가...'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들고요.



※ 본 콘텐츠는 2023년 티스토리 '꿈:틀, 날갯짓'(ikevin.tistory.com) 블로그에 게시되었던 포스트를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새롭게 재구성하여 쓴 글입니다.

최초 게시일 : 2023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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