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기 직렬설치용 선반 자체 제작


신혼 때부터 쓰던 통돌이 세탁기.. 10년 넘게 사용하다 보니 예전보다 소음과 진동도 커지고 세탁기 밑으로 물이 줄줄 새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탁기 안에서 곰팡이(?)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게 제일 신경에 거슬렸습니다. 냄새! 기능상의 문제는 없었지만 세탁기를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또한 안방 발코니에 있는 건조기를 드럼세탁기 위로 올리면, 발코니 공간도 확보하고 세탁실의 공간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겸사겸사 드럼세탁기를 새로 구매했습니다. :)




현재 집에서 사용중인 건조기는 L사에서 만든 8kg급 건조기입니다. 거의 초창기 모델이죠. 한때 콘덴서 리콜 문제로 좀 시끄러웠던 모델인데, 지난 6년간 사용하면서 2020년에 한 번, 그리고 바로 지난주에 또 한 번, 이렇게 총 두 번의 무상수리를 받았습니다. 1시간 이상을 돌려도 빨래가 전혀 건조가 되지 않아 A/S를 신청하니, A/S 기사분이 아래 사진과 같은 내장부품 덩어리를 통째로 들고 와서 집에서 바로 건조기를 분해한 후 교체를 하더군요. 신품은 아니고 아마 재생품인 것 같았습니다. 단종된 모델인데 신품이 있을 리가 없겠지요. 




이번까지는 어쩌다 운이 좋아(?) 무상수리였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몇년마다 A/S를 받아가며 (원래 수리비용은 약 40만 원 정도 된다고 함) 사용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앞으로 몇 년 후에 또 고장 나면 아예 새 걸로 바꾼다는 생각으로 건조기는 일단 그대로 쓰고 드럼세탁기만 먼저 구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세탁기 바꾸는 김에 건조기까지 일체형으로 구입하면 깔끔하기는 한데 말이죠.




전자제품 매장에 가서 드럼세탁기를 주문하고 매장직원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일단은 건조기를 세탁기 위로 올리지 말고 지금 그대로 사용할 것을 권유하더군요. 이유는, 제가 구매한 드럼세탁기는 L사 24kg급 드럼세탁기인데 정품 스태킹 키트가 지금 쓰고 있는 건조기와 맞지 않아 사제 앵글을 따로 구매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제 앵글값과 설치비(세탁기 위로 올리는 인건비)까지 약 16~18만 원 정도 하는데 1~2년 후 건조기를 바꿀 거면 그 비용이 아깝다 이거죠. 나중에 기존 건조기를 철거하는(밑으로 내리는) 비용은 또 별도라고 합니다. 필요 없어진 앵글의 폐기 비용도 따로 들고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 입니다만, 결국 집안 공간 활용의 큰 꿈(?)을 버리지 못하고, 인터넷으로 10만 원 이하대의 앵글 구입 후 셀프로 설치하고 아내와 같이 건조기를 들어 올려 설치하기로 결정합니다! 
(나중에 아내와 단둘이 건조기 들어 올리다가 개고생을 좀 하기는 합니다. -_-;;)




집에 돌아와 건조기 직렬설치와 관련하여 폭풍 검색을 해보니 다양한 제품들이 존재하더군요. 튼튼해 보이기는 한데 너무 과할 정도로 두꺼운 철기둥을 쓰는 제품이 있는가 하면, ㄱ자 앵글을 볼트, 너트로 조립해서 만든 허접한 제품도 가끔 보입니다. 판매되는 앵글 제품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길어야 한 2년 정도 쓸 물건인데 과연 저만한 값을 치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저런 앵글을 꼭 설치해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더군요.
그러던 중 어느 블로그의 글을 보게되었습니다.
앵글 없이 두꺼운 나무판을 이용해서 설치를 하셨더라고요.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서 나무판 가격을 알아보니 6~7만 원대.. 제품의 품질을 떠나서 단순 가격만 놓고 보면, 제가 생각한 가격대는 아니더군요. 제가 따로 봐 둔 앵글 제품이 8만 원대인데 나무판의 가격이 그 정도면, 차라리 1~2만 원 더 주고 앵글을 설치하는 게 나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나무판' 아이디어를 토대로 집 안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활용해 직접 만들어 보자..입니다. :)




일단, 정품 스태킹 키트의 구조가 궁금했습니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유튜브에서 동영상 하나를 발견했는데요, 동영상 중에 스태킹 키트가 설치된 장면을 캡처해서 보면 다음과 같은 구조입니다.




드럼세탁기 상부의 양 사이드로 건조기가 올려지는 브라켓 두 개가 설치되고요, 뒤쪽에서 나사못으로 고정을 합니다. 그 후 건조기를 드럼세탁기 상부에 올려놓고 앞부분의 빈 공간을 마감재로 막아버리면 설치가 끝나는 것입니다. 스태킹 키트는 단순히 드럼세탁기 위에 건조기를 안정적으로 올려놓고 앞·뒤·좌·우로 움직이지 않게 지지하는 역할만 하고요, 건조기의 모든 수직하중은 결국 밑에 있는 드럼세탁기가 감당하게 됩니다. 드럼세탁기를 설계할 때 상부에 80~100kg 또는 그 이상에 달하는 엄청 무거운 건조기가 설치될 것을 미리 계산해서 세탁기 내부 구조물을 아주 튼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드럼세탁기 자체가 아주 튼튼하고 훌륭한 앵글이다.
사제 앵글 필요없다! 




포인트는 바로 '브라켓의 설치 위치'입니다. 당연히 큰 힘(무게)을 받는 부분에 브라켓을 설치하겠죠. 세탁기 상부의 네 모서리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건조기를 드럼세탁기 위의 네 모서리에 맞게 올리면 크게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쓰고 있는 건조기의 가로와 폭이 작다 보니 모서리의 위치를 정확히 맞출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세탁기 상부의 모서리 부분에 진동 흡수와 미끄럼 방지를 위한 패드를 깔고, 그 위에 세탁기와 같은 사이즈의 넓은 나무판을 올려놓은 후 그 위에 건조기를 올려놓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단, 최대한 집안에 있는 자재와 잡동사니들을 재활용하여 저렴하게 제작한다가 목표입니다. :)






일단 세탁기 배송 하루 전에 기존의 통돌이 세탁기를 집 밖으로 옮기고 세탁실 바닥 물청소를 합니다. 세탁실 벽면에 붙어있던 커다란 선반도 미리 뜯어 냅니다. 선반이 있으면 건조기를 올릴 수 없기 때문이죠. 입주할 당시 세탁실 벽면에 탄성코팅을 했었는데 선반이 있던 자리는 미처 코팅을 못해서 벽이 하얗게 남아있네요. 




다음날, 세탁실을 미리 치워둔 덕분에 세탁기 설치는 약 10분 만에 끝이 났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건조기 선반을 만들어 봅니다.

아래의 책상은 제가 몇 년 전 지방 근무할 때 자취방에서 썼던 것입니다. 상판 두께는 약 2cm 정도로 저가의 MDF 재질이에요. 지방에서 복귀한 후 쓸 일이 없어 지금까지 창고에서 한 6년 정도 방치된 것 같네요. 그동안 몇 차례 버릴까 하다가 귀찮아서 놔뒀는데 이번 기회에 큰 마음먹고 재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책상다리를 모두 떼어내고 톱질 준비를 합니다.




톱질하기 전 정확한 재단 사이즈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요.




책상 테두리 고무 몰딩을 제거하고 재단선을 그려줍니다.




톱질 시작~





깔끔하게 잘 잘렸네요!




톱질이 끝난 후 세탁기 위에 올려놓고 사이즈를 확인합니다. 




나무판 옆면이 지저분해 보여서 고무 몰딩을 다시 붙여줍니다.




단순히 세탁기 위에 나무판만 올려놓으면 좌우로 미끄러질 우려가 있어서, 집 안 구석구석 잡동사니를 뒤져서 두툼한 EVA 패드와 나무판을 고정시킬 수 있는 재료들을 모읍니다.
맥가이버의 배경음악이 필요한 때이군요! ㅎㅎ




두께 12mm 정도 되는 두꺼운 패드를 잘라서 스태킹 키트의 설치 위치와 같은 곳에 놓아줍니다. 너무 단단하지도 너무 물렁하지도 않은 재질의 패드입니다. (예전에 스팀청소기 받침대로 쓰던 패드입니다)




그 위에 나무판을 살짝 올려주고요.




옆에서 보면 나무판이 세탁기 상판에서 패드의 두께만큼 떠 있습니다. 건조기가 설치되면, 건조기의 모든 하중은 나무판을 통해 패드가 설치된 포인트 지점에 전달되게 됩니다.




나무판이 좌우 또는 앞으로 밀리는 것을 막기 위해 고정장치를 달아줍니다. ㄱ자 브라켓 6개와 공조덕트용 스펀지를 이용해 제작을 합니다. 스펀지는 드럼세탁기 본체에 스크래치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ㄱ자 브라켓을 아래 사진과 같이 설치를 합니다. 스펀지 부분을 드럼세탁기 옆면에 바짝 붙여주고 나사못으로 고정을 합니다.





좌우, 뒷면까지 총 6개의 고정장치를 부착합니다. 혹시 모를 진동에 의해 나무판이 양옆이나 앞으로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입니다. 뒤쪽은 벽이라서 혹시 나무판이 뒤로 밀리더라도 건조기가 낙하하거나 전도의 우려는 없어 보입니다. 건조기가 앞으로 쓰러지는 게 최악의 경우이지요.




나무판은 어느 정도 고정이 됐으니, 이번에는 건조기를 나무판에 고정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철물 상자를 뒤져보니 ㄱ자로 된 납작한 브라켓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을 이용해 건조기의 다리가 밀리지 않도록 고정을 시켜봅니다.




건조기의 뒤쪽 다리가 놓일 곳을 계산해서 ㄱ자 브라켓 2개를 겹쳐서 나사못으로 고정을 합니다. ㄱ자 모양의 안쪽에 건조기의 다리가 위치함으로써 건조기가 나무판 위에서 뒤 또는 양 옆으로 움직이는 것을 제한합니다.




이로써 건조기 선반 제작은 어느 정도 끝이 났습니다. :)




건조기를 올려놓기 전 최종 확인을 합니다. 힘들게 건조기를 들어 올려 설치했는데, 만약 뭔가 하나라도 안 맞으면 최악의 경우 건조기를 다시 내려야 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생각하기도 싫네요..




그 후, 약 30분간...

아내와 함께 건조기와 씨름을 하며, 땀 삐질삐질.. 낑낑거리며 겨우 설치를 완료했습니다. 8kg급 건조기인데 생각보다 무게가 꽤 나갑니다. 스펙을 보니 건조기 무게가 약 60kg 정도 하네요. 더군다나 세탁실 안이 비좁다 보니 건조기 사이로 사람 둘이 들어가면 간신히 서 있을 공간밖에 없어서 들어 올리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




세탁실 앞에 쭈그려 앉아 시험 삼아 이불을 건조기에 넣고 돌려봅니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질까 혹시 몰라서 20~30분가량을 계속 쳐다보며 앉아있었네요. 

밑의 드럼세탁기 자체가 워낙 무게가 있다 보니 건조기가 돌고 있는 중에도 미세한 흔들림도 없고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세탁기 상부 모서리에 깔아 둔 패드도 꽉 눌린 체 적당한 두께를 유지하고 있어 나무판과 세탁기와의 접촉도 없고요. 내일부터 세탁기를 본격적으로 돌리면서 전체적인 진동 정도를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튼튼하고 멋진 앵글 선반은 아니지만, 돈 한 푼 안 들이고 집안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활용해 선반을 만들었다는 게 일단은 뿌듯하네요. 굳이 비용을 따진다면 톱질하고 남은 책상 폐기비용 3천 원 정도네요.

건조기 수명이 다할 때까지 선반이 잘 버텨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



※ 본 콘텐츠는 2022년 티스토리 '꿈:틀, 날갯짓'(ikevin.tistory.com) 블로그에 게시되었던 포스트를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새롭게 재구성하여 쓴 글입니다.

최초 게시일 : 2022년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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