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첵]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 서진규





(p.25)
삶도 그렇다.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각자의 삶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삶은 행복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행복해진다. 하지만 삶은 불행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삶을 어떻게 보느냐,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이냐는 대부분 개인 자신에게 달려있다.


(p.54)
구체적인 무언가를 꿈꾸기에는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 열악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마음속에서는 불같은 의지가 늘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 의지가 내 운명을 창조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현실이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동떨어졌을때, 나는 그 현실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현실과 맞서 싸웠다. 나는 내 의자와 노력, 그리고 나에 대한 믿음으로 '진정한 운명'의 길을 개척해왔다.


(p.59)
스스로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당당한 것인지를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p.69)
매순간 내 자존심을 자극했다.


(p.70)
내 앞에서 잘난 척 으스대는 저 사람들. 그저 운이 좋아 나보다 나은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 말고, 나보다 더 나을것도 없지 않은가.


(p.71)
골프장과 판잣집을 오가는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나는 이무렵 희망의 등불을 다시 가슴에 켜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학원에 다녔던 것이다. 학원비가 적지 않은 부담이었지만 입을 옷을 안사고 조금 덜 먹더라도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싶었다. 내 희망의 등불을 되살리는데 그만한 투자는 달게 감수하고 싶었다. 세상에, 희망없이 산다는 일의 막막함을 무엇에 견줄 수 있겠는가.


(p.81)
나는 운명은 창조된다고 믿는다. 현실은 하나가 아니다. 여러개의 면을 가진 다면체이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물이 반쯤 차 있는 컵'의 비유가 바로 그것이다. 현실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 의해 좌우된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현실을 보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미친 사람이라고 무시한다. 그러나 미친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보고 느끼는 현실이 진정한 현실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울고 웃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한다. 미친 사람의 현실과 정상적인 사람의 현실. 그 중 '참된 현실'이 어느 것인지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p.81)
자기자신을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스스로의 운명을 창조하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운명을 창조한다는 의미에서 운명론자이다.


(p.83)
나는 나 자신과의 대화를 거듭하면서 용기와 희망의 힘을 새삼 발견했다. 자기자신을 설득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의 자기 합리와. 그때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설득하기 힘든 것이 자기 자신이지만, 일단 자기 자신과 합의가 이루어지면,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내가 자기 자신을 믿고 따르라고 말할 때의 자기 자신은, 바로 '대화를 통해 합의된 자기 자신'인 것이다.
자기자신과 대화를 하기 이전의 나는 여러 개의 나로 분열되어 수시로 갈등한다. 갈등하면 힘이 모이지 않고 분산된다.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하나하나 제거된다. 하나의 목표만 설정된다.
이것이 바로 꿈을 보는 자기만의 눈이다.
현실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나 자신의 마음가짐, 즉 현실을 보는 시각만 달라지는 것이다.


(p.106)
사람도 스스로 돕는자를 돕니다.
그렇다.
사람들도 하나님처럼 스스로 돕는자를 도와주고 싶어한다.


(p.109)
나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공부에 전념하고 싶었다.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p.204)
진정한 행복은,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렸다.


(p.211)
자기의 삶을 충실히 해나가는데 필요한 체력인 것이다.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있는 도전의 삶을 살아온 나는 항상 체력에 신경을 썼다. 처음 연애를 하며 시작했던 태권도를 미국 대학에서도 계속 배웠고, 서른이 넘은 군대 시절에도 운동삼아 배웠다. 외면적이고 가식적인 '아름다움'에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내겐 약을 먹어가면서까지 살을 빼려는 젊은 사람들이나, 귀찮다며 운동을 게을리해서 건강을 망쳐가는 부모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올바른 정신은 오직 올바른 몸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p.227)
밥 먹을때, 밥을 짓거나 설거지할 때, 청소할 때, 쇼핑할 때, 심지어는 샤워할 때까지도 쉬지 않고 일어 테이프를 들었다. 자기전에도 침대 옆에 테이프를 틀어놓고 듣다가 잠들었다. 뒷날 일본에 체류할 땐, 알람 시계도 라디오에 연결된 것을 사서 아침에 일본어를 들으며 잠을 깨곤 했다. 말하는 데도 일본어가 경상도 역양과 비슷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내 사투리를 활용했다. 기회 있을때마다 일본 사람들을 사귀어 회화 연습을 했다. 피로하고나 좀 쉬고 싶을 땐 편안한 소파에 기대어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같이 웃고 울었다.
외국어든 다른 공부든, 시간이 쪼들린다는 핑계는 있을 수 없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공부를 하기 싫다는 말과 같다.


(p.240)
나는 주어진 현실에서 한 번도 낙오하지 않다. 그것이 나의 재산이었다.
나는 무슨 일에 도전하기에 앞서 항상 세가지 리스트를 작성한다.

첫째,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둘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셋째,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 세가지 문제에 답할 수 있다면, 현재의 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희망에 도전하려는 나를 알고 있다면, 그 희망은 이미 절반은 이룬 셈이다. 그런후엔, '죽을각오'를 하고 희망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다. 나를 파악하고 나를 장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희망의 성취여부를 결정하는 최대의 관건이다.


(p.254)
온갖 역경을 헤치며 꿈을 성취해온 나 역시 어느새 오만해져 있었다. 높은 것, 강한 것, 큰 것이 아니면 도전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건방져져 있었던 것이다.


(p.255)
사실 처음에는 나도 무척 힘들었어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하느님이 보시기에 뭐든지 잘되니까 내가 세상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아 걱정되셨던 거예요. 더 늦기 전에 나를 바로잡으려고 그러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건방지면 큰일을 할 수 없잖아요. 이번 일로 겸손을 배웠어요.


(p.260)
군은 제게 계속 남아있기를 권했습니다. 저도 남아 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가슴속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p.306)
꿈을 잃고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 삶을 통해 '당장은 길이 보이지 않지만, 꿈과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다 보면 길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그들에게 작으나마 분명하게 존재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은 것이다.


(p.311)
꿈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꿈꾸는 사람을 가혹하게 다룬다.
꿈을 꾼다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한다는 것이다.
누구엔가, 오직 한 사람이어도 좋다.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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